Ⅰ. 서론
복시(diplopia)는 하나의 물체가 겹쳐 보이거나 둘로 나뉘어 보이는 증상으로 안구 굴절이상, 외안근마비, 핵상병변, 핵하병변 등에 의해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1].
복시의 치료는 복시를 유발하는 원인을 교정하는 것이 가장 최선이나 복시 증상 자체를 경감시키는 치료 또한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복시치료를 위해 약물을 이용한 보존적 치료나 외과적인 처치를 고려해 볼 수 있으며, 양안복시의 경우 단안 차폐치료, 프리즘치료 등을 적용할 수 있다[
2].
최근 한의학계에서는 복시 증상을 포함하는 동안신경마비[
3-
5], 외상성 외전신경마비[
6,
7], 마비성 사시[
8,
9], Guillain-Barre Syndrome [
10]에 대한 증례보고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상의 연구들은 대부분 사시와 안구 운동 제한에 대한 치료 효과를 집중적으로 평가하였으며, 복시 양상 변화에 대한 고찰은 다소 제한적이었다.
이에 본 증례에서는 외상으로 인한 좌측 안와 골절 후 복시 증상과 함께 좌측 안구 운동 제한 및 좌측 안면 감각이상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전침치료를 포함한 보존적인 한방 치료를 시행하여 임상증상 호전을 확인한 바 있어, 이를 복시 증상 평가를 위주로 하여 기술하고자 한다. 본 증례보고는 Joel J Gagnier 등이 제안한 CAse REport (CARE) guideline의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치료 및 경과 기록과 게재에 대한 환자의 동의를 구한 뒤 진행되었다.
Ⅲ. 고찰 및 결론
복시는 원인 질환에 따라 치료 계획이 달라지기 때문에 정확한 진단이 중요하다.
우선 복시가 단안복시인지 양안복시인지를 구분해야 한다. 복시 증상이 한쪽의 안구에서만 나타나는 단안복시의 경우 두 물체의 거리가 주시 방향에 관계없이 일정한 특징이 있으며 안과적인 굴절이상으로 인한 것이 많다[
1]. 한쪽 안구를 가렸을 때 복시 증상이 호전되는 양안복시의 경우 동일한 상이 양안의 서로 대응되는 망막 부위를 자극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2] 시각축의 이상, 신경근접합부의 병변, 신경이나 근육을 침범하는 질환 등에 의해 발생 가능하고[
11], 뇌신경(Ⅲ, Ⅳ, Ⅵ) 마비가 가장 흔한 원인이나 외상은 드물다[
12].
양안복시에서는 복시 증상이 수평, 수직 혹은 대각선 방향으로 나타나는지를 확인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상의 분리를 악화시키는 주시 방향은 어느 외안근에 기능 이상 및 장애가 있는지 추정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한다. 수평복시만 나타나는 경우 내직근이나 외직근의 장애와 연관이 있으며, 물체의 상이 기울거나 대각선 방향의 복시가 나타나는 경우 상사근이나 하사근의 이상을 의심할 수 있다[
2].
본 증례보고의 환자의 경우 좌측 안와의 내측벽과 하벽의 골절 이후 복시 증상이 유발되었으며, 단안에서는 시각에 이상이 없었으나 양안 주시 시에만 복시 증상이 나타났다. 또한 정면 주시에서는 사시가 없으나 좌하방으로의 좌안 운동 제한이 관찰되었으며 복시 증상도 하방, 좌하방, 좌측방을 주시할 때 심하게 나타났다. 따라서 본 환자가 호소하는 복시는 외상으로 인한 일측의 외안근 기능 이상으로 유발된 양안복시로 추정할 수 있으며, 골절 부위, 수직 방향으로 상이 벌어지는 양상과 제한된 안구 운동 방향을 고려하였을 때 좌측 하직근의 부전마비와 함께 하사근 기능에도 일부 이상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환자가 안구를 굴릴 때 좌측 안와 하부와 내측부에 느꼈던 뻐근한 감각이상과도 연관된 것으로 여겨진다.
국내 연구에 따르면 복시를 호소하는 안와골절 환자의 경우 수술적 치료 시 90 %, 보존적 치료 시 96.6 %에서 6개월 이내에 복시 증상의 호전이 관찰되었다고 보고되었으며, 평균 복시 소실 시기는 각 군에서 30일, 17일이라고 하였다[
13]. 수술로 발생 가능한 합병증으로는 감각저하, 사시, 복시, 감염, 실명 등이 보고되어 있어[
14] 복시 증상 개선을 위한 외과적인 접근의 효용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있다.
한편 안과적 질환에 대한 한의학적 연구에는 동안신경마비, 외전신경마비 등 뇌신경 마비로 인한 사시 및 복시를 치료한 증례보고[
3-
9]들이 있었으며, 대부분의 증례보고에서 마비성 사시와 복시 증상 개선을 위해 전침치료 위주의 한방치료가 시행되었다. 이 중 안와 주변 근위취혈을 이용한 전침치료 증례보고는 3건이었으며[
3-
5], 안와 내 자침을 통한 외안근 전침치료 증례보고도 다수 있었다[
6,
7,
9].
전침치료는 전통 침구요법과 현대과학 기술이 결합된 치료법으로 주로 통증, 마비질환에 응용되고 있다[
15]. 전침치료의 전기적 자극 빈도에 따라 분비되는 신경 전달 물질이 다르다고 알려져 있으며, 마비질환에서 근육 기능 회복을 위해서는 저빈도의 전기적 자극이 효과적이라는 보고가 있다[
16].
따라서 본 증례보고에서도 안와 골절로 인한 복시를 호소하는 환자의 증상 완화를 위해 외안근 기능 이상 개선을 목적으로 2 Hz의 저빈도 전침치료를 포함한 한방치료를 시행하였다. 다만 병력청취 과정에서 추가적인 수술을 거부하고 보존적인 한방치료를 선택한 환자의 특성 상 안와 내측으로의 적극적인 침치료에는 두려움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어 안와 하부 외안근에 대한 직접적인 자극은 배제하였다. 이전 연구들의 치료 경과를 참고하였을 때 안와 주변부의 전기 자극만으로도 간접적인 외안근 치료 효과를 일으킬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되어 좌측 안와 주변에서 攢竹(BL2), 絲竹空(TE23), 陽白(GB14), 魚腰(EX-HN4), 四白(ST2), 瞳子髎(GB1)를 근위취혈하여 전침치료를 시행하였으며, 좌측 안면의 감각이상 완화를 위해 근위취혈과 원위취혈을 병행한 일반 침치료를 함께 시행하였다.
복시의 진단 및 중증도(severity) 평가를 위한 안과적 검사로는 Goldmann diplopia field test, Hess screen test 등이 있다[
17]. 이 중 Goldmann test는 복시 진단 검사의 gold standard로 여겨지나 기계 장비를 갖춰야 하고 검사 방법이 다소 복잡하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Jonathan MH 등[
18,
19]은 Goldmann test를 대체하기 위한 평가 도구로서 복시 설문지(diplopia questionnaire) 와 경추 가동 범위 측정도구(cervical range of motion instrument, CROM)를 이용한 경추 가동 범위 복시 검사(cervical range of motion diplopia examination) 를 개발하였으며, 검사의 타당도와 신뢰도가 입증되어 이를 본 증례보고에 적용하였다. 한편 CROM을 이용한 복시 범위 평가의 경우 도구의 특성상 수직, 수평 방향에서 발생하는 복시 증상만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추가적으로 각도기를 이용하여 안구의 대각선 운동 방향에서 나타나는 복시를 평가하고자 하였다. 다만 정상 성인에서 관찰되는 최대 안구 운동 범위는 수평으로 약 50°, 수직으로 약 45°인데[
20], 상기한 2종의 복시 각도 검사상 좌상방, 상방, 우상방, 우측방, 우하방으로의 안구 운동에서는 정상 운동 범위 내에서 복시가 유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별도의 기록 없이 좌측방, 좌하방, 하방 안구 운동에서의 복시 유발 각도만을 표기하였다.
치료 기간 동안 각종 평가지표와 함께 환자 주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복시 시야 범위와 좌측 안면 감각이상은 지속적인 호전을 보였다. 복시 설문지 평가는 최초 평가보다 14점이 감소한 8점으로 측정되었으며, 정면, 상방, 우측방의 주시 방향에서는 복시가 소실되었으나 좌측방, 하방에서의 복시는 지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복시 각도 검사와 주관적 복시 범위 평가를 통해 좌측방, 좌하방, 하방에서 발생하는 복시 범위는 꾸준히 감소하여 호전됨을 알 수 있었으며, 미약하지만 좌측 안구의 좌하방 운동 제한 개선도 관찰되었다. 이상의 증상 호전은 한방치료를 통해 안와 골절로 인한 마비 및 손상이 의심되는 좌측 하직근과 하사근의 기능 회복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사료된다. 좌안의 운동성이 회복되면서 양안복시가 호전되고 안와 주변부와 안와 내측에서 느껴졌던 뻐근한 양상의 감각이상이 개선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복시 발생 각도 감소의 경향성은 CROM 평가와 각도기 측정에서 일치하였으나 경추 신전(하방 주시), 경추 우회전(좌측방 주시)의 측정값에서는 차이를 보였다. 이는 회전축의 중심이 CROM의 경우 경추에 위치하는 반면, 각도기의 경우 환자 양안 전방의 중점으로 상대적으로 경추 전면에 위치하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되며 이는 CROM 평가의 결과값이 각도기 측정값보다 작은 것과 동일한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다.
본 증례보고의 환자의 경우 복시 발생 및 안와벽 골절에 대한 재건 수술 이후 별다른 증상 호전 없이 4개월이 경과한 시점에서 한방치료를 시작하였다. 이는 안와골절로 인한 복시의 평균 소실시기인 17일을 크게 상회하는 기간으로[
13] 상대적으로 외안근의 손상으로 인한 기능 장애가 심한 상태였다고 볼 수 있다. 안와 골절로 유발되는 복시가 드물고 합병증의 위험이 있는 외안근 복원 수술 없이 전침 중심의 한의학적 보존치료를 통해 증상을 개선시켰다는 측면에서 본 연구는 단일 증례이지만 임상적으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된다. 또한 복시, 마비성 사시, 동안신경마비 등의 유사 환자에게 한방치료를 시도함에 있어 치료, 대상을 외안근이 아닌 근위취혈로 선택하여 침치료를 시행하는 데에 참고가 될 것으로 사료된다. 독서, 식사 등 일상생활의 대부분이 정상 안위의 하방에 이뤄진다는 점에서 좌하방에서의 극심한 복시를 호소했던 본 환자의 증상 호전은 의미가 있으며, 향후 사회로의 복귀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긍정적인 심리를 갖게 했다는 점에서 비특이적인 치료 효과도 갖는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재원 기간 동안 환자가 수면불량 등으로 인해 피로한 경우 일시적인 복시 증상 악화를 느낀 바 있어, 치료에 있어 복시를 유발하는 원인 해결뿐만 아니라 컨디션 유지 및 관리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약 4주간의 한방치료를 시행하였으나 완전한 증상 소실에는 도달하지 못한 것이 아쉬운 점으로 생각되며, 치료 효과의 객관화를 위한 추가적인 연구 및 증례보고가 필요할 것으로 사료된다.